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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첫 물, 백록담

 

하늘 아래 첫 물, 백록담

 

 


예로부터 한라산은 선인(仙人)들이 사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많은 이들에게 우러름을 받았다.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체가 웅장하기 이를 데 없고 눈길 닿는 곳마다 장엄한 기운이 서려 있으니 옛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으로 각인됐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 신성함은 여전하다. 지금도 한라산 허리춤에서는 운무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산신령이 변덕이라도 부리는 듯 하루에도 몇 번씩 기상이 바뀌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비록 예전과 같은 우러름은 아니라 해도 한라산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시선은 과거나 현재나 다름이 없다.
한라산에 대한 경외감은 높이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름 안에 이미 ‘높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으니 옛 사람들이 산을 얼마나 우러러 봤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라산(漢拏山)을 풀이하면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을 만큼 높은 산’이란 뜻이 되는데, 아마도 산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될 만큼 까마득하게 여겨져 이러한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한라산은 실제로 얼마나 높을까. 한라산의 높이를 최초로 측정한 사람은 독일인 지리학자 지그프리드 겐테 박사다. 1901년 당시 겐테 박사는 여러 장비들을 이용해 한라산의 해발고도가 1,950m임을 밝혔다. 이후 100년이 넘도록 이 수치는 한라산의 공식적인 높이로 통용돼 왔다.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타이틀도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라산의 높이가 기존보다 약 3m 낮은 1,947.06m인 것으로 새롭게 조사됐다. 그럼에도 한라산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높디높은 그곳에 하늘이 내린 물을 오롯이 담고 있는 거대한 그릇, 백록담이 있다.

 

 

하늘이 내린 순수한 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백록담 호수

한라산 탐방로는 등산객들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다.

 

 

 백록담은 한라산 정상에 자리한 산정 화구호다. 약 2만여 년 전 한라산 정상에 분화구가 생성되면서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고여 호수를 이뤘다. 하늘빛을 머금어 맑게 빛나는 백록담 안에 대한민국 최고(最高)의 물이 담겨 있다. 

 백록담은 빗물과 눈 녹은 물 등 온전히 하늘에서 내린 물만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강우량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백두산 천지와 달리 지하수로 유입되는 물이 없어 한 달 정도 가뭄이 지속되면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백록담은 둘레 약 1.7km, 깊이 약 108m인 넓은 화구호이지만 만수인 경우에도 분화구가 가득 찰 만큼 물이 차지는 않는다. 최대 만수일 때 약 4m 남짓한 깊이의 호수가 만들어진다. 백록담이 만수를 이룬 진풍경은 보통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지나간 직후에 볼 수 있다. 거친 풍파 뒤에 찾아든 순수하고 영롱한 물빛은 세상 그 어느 명화보다 아름답고 찬란한 풍경을 선사한다.
한라산이 오랜 세월 신성시돼 온 것처럼 백록담도 고귀한 물이 담긴 신비로운 호수로 여겨져 왔다. 물 한 방울도 귀하던 옛 시절, 우러러보기도 힘든 높은 산꼭대기에 거울처럼 맑은 물이 찰랑대고 있으니 이 어찌 감탄스럽지 않을 것인가. 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내려다보면 대자연이 빚은 아름답고 오묘한 자태에 그 누구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최고(最高) 물과의 조우

 

한라산을 오르며 만나는 설경은 또 하나의 선물이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한라산의 겨울 풍경

 

 백두산 천지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그만큼 천지 부근 기상이 변화무쌍해 맑은 날씨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한라산도 다르지 않다. 기상예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산 정상의 날씨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다. 파란 하늘 아래 너른 호수처럼 빛나는 백록담을 만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따를 수밖에 없다. 행운이 따른다면 첫 등반에도 아이처럼 순수하고 말간 얼굴을 한 백록담과 조우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쁜 경우에는 여러 번 등반해도 안개에 휩싸인 성난 백록담만을 만날 수밖에 없다. 백록담과의 만남을 기대한다면 마음을 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물을 만나러 가는 길. 백록담까지 9~10km의 탐방로를 따라 4~5시간 동안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녹록지 않은 여정이다. 하지만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인 설국 풍경에 발걸음이 그 어느 때 보다 가볍고 설렌다. 머리 위로 풍성하게 피어난 눈꽃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어여쁘다. 하늘과 맞닿은 그곳에, 눈꽃만큼이나 순수하고 맑은 물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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