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댐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경호강과 지리산에서 발원한 덕천강이 합류하여 서부 경남의 젖줄 진양호를 이루는 곳에 위치고 있으며, 1969년 1차 완공되었으나 이후, 남강다목적댐보강사업를 통하여 2003년 높이 34m, 길이 1,126m, 유역면적 2,285km²로 최종 준공되었다. 남강댐은 서부 경남지역의 생·공용수 및 관개용수의 안정적 공급과 남강 하류 및 사천만 연안의 홍수피해 경감, 수력발전 등 수자원의 적극적 활용을 목적으로 건설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목적댐이다.
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일깨워 주는 곳으로 1층은 생명의 물, 남강의 물, 새천년의 물이란 테마로, 2층은 그리운 내고향, 제3전시실,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워터스크린을 통해 웅장한 음악과 아름다운 사계를 보여주며, 영상관에서는 첨단 입체영상도 상영한다.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진양호는 맑고 수려한 풍광을 지닌 서부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로 지리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시원하게 트인 전망과 아침에 피어나는 호반의 물안개와 황홀한 저녁노을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진양호는 서부경남의 대표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진양호공원, 휴게전망대, 봄 벚꽃터널, 경남유일의 동물원, 물문화관, 어린이 교통공원, 진양호 일주도로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진주성 아래 종합사회복지관 뒤편의 인사동 골동품거리가 명실공히 우리 민속품을 포함한 문화재 등의 매매거리로, 볼거리가 많은 진주의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2000년 6월에 정부에서 지정한 「새즈믄해(천년)거리」이기도 하다. 진주시 남성동, 인사동 일대에 분포된 골동품상점은 21개소에 달해 진주시내의 고 미술품 업소 중 거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있다. 진주성 북장대 아래의 도로를 따라 600m 길이에 조성된 이 골동품거리는 10여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이 업계에서는 전국에 알려져 있다. 거래되는 품목은 고문서와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기타 문화재,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물 등 다양하다 진주시는 이곳을 전국의 명물로 관광명소화로 추진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석성(둘레 1,760m)으로 축조된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이다. 본래 토성이던 것을 고려 우왕5년 (1379)에 석성으로 수축하였다. 성안에는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북장대, 창렬사, 서장대, 호국사, 임진대첩계사군의단, 국립진주박물관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왜란 3대첩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룬 곳이며, 왜군과의 2차 전쟁인 1593년 6월, 7만 여명의 민ㆍ관ㆍ군이 최후까지 항쟁하다 장렬하게 순국하였고 이때, 논개(論介)는 적장을 껴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다.
기생과 한량이 야심한 밤에 밤참으로 배달해 먹거나 인력거를 타고 와 먹었다는 진주냉면은 멸치, 바지락, 홍합 등으로 육수를 내고 쇠고기육전과 달걀노른자 지단을 고명으로 얹는다. 동치미 무만 썰어 고명으로 올리는 평양냉면과 달리 맛에 멋까지 챙기는 풍류가 엿보인다. 1945년에 개업한 하연옥은 진주냉면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곳. 황덕이 할머니의 큰딸 하연옥 씨가 대를 이어 운영 중이다. 만화 <식객>에도 소개되었다.
강주연못은 본래 강주의 영터(康州營基)라고 전한다. 진양지(晋陽誌)에 의하면 하륜(河崙:1347~1416)은 그의 촉석성 성문기(矗石城 城門記)에서 "기미년(1379) 가을에 지밀직 배공(知密直 裵公, 裵克端:1355~1392)이 강주진장(康州鎭蔣)으로 와 있으면서 목관에게 이첩하여 '촉석성'이 흙으로 된 것을 돌로서 쌓게 하였더니 역사가 반도되지 못하여 왜구에게 함락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곳이 고려말 우왕 5년(1379년)에 배극렴이 진을 치고 있던 영터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곳이 석축된 오늘날의 진주성(晋州城)을 있게 한 근원지이다. 강주연못이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못둑에는 5~6백 년 정도의 고목이 우거져 있고, 또 이곳의 이팝나무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이 전하는 것 등으로 이 강주연못 일대는 진주의 역사상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못뚝에는 오래된 고목이 무성하고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좋아 연중 관람객이 많고 학생들의 소풍놀이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특히 2004년 생태공원의 조성으로 환경과 교육, 휴식이 어우러진 장소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름다운 꽃과 숲의 향기가 가득한 경상남도수목원은 산림과 동식물에 대한 자연생태 종합학습교육장이다. 58ha의 면적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자생종과 외국도입 수종 중 보존가치가 있는 식물 2700여 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림박물관을 비롯한 열대식물원, 야생동물원, 무궁화공원, 무궁화홍보관, 화목원 등이 테마별로 조성되어 있는 가족단위의 건전한 휴식명소다.
물새발자국과 공룡발자국이 한자리에 혼재되어 있어 천연기념물 제395호로 지정된 세계적으로 희귀한 화석지위에 전시관을 건립한 세계 3번째 건물로 화석문화재전시관, 자연사관, 과학전시관, 천체관, 실험실 등 최첨단 과학기반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創建)한 사찰로 창건하게 된 동기는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그 후 고려 우왕 6년(1380), 조선 태조 6년(1397) 실상사장로(實相寺長老) 상총대사(尙聰大師)가 중건(重建) 하였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불탄 것을 선조 35년(1602)에 계행, 극명 스님이 중수하고 광해군 5년(1612)에는 고명스님이 대웅전 불보살과 제석과 대범상을 조성하고 조선조 말에 포우대사가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대웅전은 경남(慶南)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건물의 형식은 단층 팔작지붕와가(瓦家)로서 다포계(多包系) 계통(系統)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활주(活柱)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부속 건물로 업경전, 요사채(설선당), 승방(선불장), 환학루, 종각, 나한전, 칠성각, 산신각, 적묵당, 성보박물관(영산회상전), 일주문, 응양각 등이 있다.
석성(둘레 1,760m)으로 축조된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이다. 본래 토성이던 것을 고려 우왕5년 (1379)에 석성으로 수축하였다. 성안에는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북장대, 창렬사, 서장대, 호국사, 임진대첩계사군의단, 국립진주박물관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 김시민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왜란 3대첩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이룬 곳이며, 왜군과의 2차 전쟁인 1593년 6월, 7만 여명의 민ㆍ관ㆍ군이 최후까지 항쟁하다 장렬하게 순국하였고 이때, 논개(論介)는 적장을 껴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충절을 다한 곳이다.
진주성 아래 종합사회복지관 뒤편의 인사동 골동품거리가 명실공히 우리 민속품을 포함한 문화재 등의 매매거리로, 볼거리가 많은 진주의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2000년 6월에 정부에서 지정한 「새즈믄해(천년)거리」이기도 하다. 진주시 남성동, 인사동 일대에 분포된 골동품상점은 21개소에 달해 진주시내의 고 미술품 업소 중 거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있다. 진주성 북장대 아래의 도로를 따라 600m 길이에 조성된 이 골동품거리는 10여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이 업계에서는 전국에 알려져 있다. 거래되는 품목은 고문서와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기타 문화재,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물 등 다양하다 진주시는 이곳을 전국의 명물로 관광명소화로 추진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진양호는 맑고 수려한 풍광을 지닌 서부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로 지리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시원하게 트인 전망과 아침에 피어나는 호반의 물안개와 황홀한 저녁노을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진양호는 서부경남의 대표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진양호공원, 휴게전망대, 봄 벚꽃터널, 경남유일의 동물원, 물문화관, 어린이 교통공원, 진양호 일주도로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일깨워 주는 곳으로 1층은 생명의 물, 남강의 물, 새천년의 물이란 테마로, 2층은 그리운 내고향, 제3전시실,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워터스크린을 통해 웅장한 음악과 아름다운 사계를 보여주며, 영상관에서는 첨단 입체영상도 상영한다.
진주비빔밥은 잘게 썬 숙주나물, 근대나물 등 다섯 가지 나물과 육회를 얹어 비벼먹는데 속이 편하고 소화도 잘된다. 함께 나오는 선짓국은 선지, 간, 허파, 천엽, 내장을 푹 곤 국물에 무와 콩나물, 대파를 넣어 끓여 시원하고 깔끔하다. 천황식당은 1929년에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목조 기와집을 그대로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어 입구에서부터 옛 정취가 느껴진다.
강이식(姜以式) 장군을 모시는 사당. 강이식 장군은 진주강씨의 시조로, 고구려 영양왕 9년(598) 임유관(臨?關) 전투와 612년(영양왕 23)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대군 30여만 명을 섬멸시킨 명장이다. 950년 고려 광종은 고구려 병마도원수 강이식 장군의 구국충절을 기려 봉산사를 건립하고, 매년 한식날에 제사를 모시게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570년(선조 3)에 사당을 중건하고 재호를 봉강이라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716년(숙종 42)에 사당을 중건하였고, 1976년 다시 건립하였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봉산사 [鳳山祠]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찐빵 위에 고소한 팥 국물을 끼얹어주는데, 은은한 계피 향이 입맛을 돋운다. 팥죽은 달달함의 극치. 이 역시 계피 향이 은은하게 난다. 계피 달인 물을 끼얹은 팥빙수는 향긋하면서 개운하지만 겨울에는 맛볼 수 없다. 수복빵집은 낮 12시에 문을 열어 재료가 떨어지는 오후 3~4시면 문을 닫으니 부지런을 떨어야 맛볼 수 있다.
고종 32년인 1895년 폐지전까지 수백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통신수단 기능을 가져 민중의 소리를 나타내기도 했다. 1996년 8월 16일 폐지된지 1백여 년 만에 진주시민의 힘으로 '망진봉수' 로 복원되어 현재 첨단통신 시설 중계탑인 진주 MBC의 망진산 송신소와 진주 KBS의 망진산 중계소가 설치돼 있다.
역사 · 문화 · 예술의 도시 진주의 전통과 독특한 문화적 개성을 지닌 도심 속의 문화,휴식 공간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범 문화예술거리로 지정 조성되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단계(문화예술의 거리)와 2단계(역사의 거리)로 구분되어 조성된 남가람 문화거리는 10년간의 대역사로써 진양교 - 경남문화예술회관 - 진주교 - 천수교에 이르는 칠암, 망경지구 남강변 일대(74,546㎡, 2.9km)의 죽림을 복원하고 야외공연장, 기념비, 조형물, 휴식공간, 천년광장, 중앙광장 등 문화공간을 조성하여 문화예술도시의 면모를 일신시키고 있다. 도시의 중심부를 흘러가는 남강의 빼어난 자연환경과 정취, 남강과 진주성, 뒤벼리의 절경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문화예술행사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예술공연 향수 기회를 제공하고, 역사의 산 교육장 역할 수행과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여 진주의 명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도심속의 문화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아 가고있다.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새벼리는 가좌동에서 주약동에 걸쳐있는 절벽을 말하는데 아래의 남강과 절벽을 따라 펼쳐진 도로가 주변 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입구에는 석류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망원정에 오르면 칠암지역과 도동지역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꽃과 숲의 향기가 가득한 경상남도수목원은 산림과 동식물에 대한 자연생태 종합학습교육장이다. 58ha의 면적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자생종과 외국도입 수종 중 보존가치가 있는 식물 2700여 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산림박물관을 비롯한 열대식물원, 야생동물원, 무궁화공원, 무궁화홍보관, 화목원 등이 테마별로 조성되어 있는 가족단위의 건전한 휴식명소다.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創建)한 사찰로 창건하게 된 동기는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그 후 고려 우왕 6년(1380), 조선 태조 6년(1397) 실상사장로(實相寺長老) 상총대사(尙聰大師)가 중건(重建) 하였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불탄 것을 선조 35년(1602)에 계행, 극명 스님이 중수하고 광해군 5년(1612)에는 고명스님이 대웅전 불보살과 제석과 대범상을 조성하고 조선조 말에 포우대사가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대웅전은 경남(慶南)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건물의 형식은 단층 팔작지붕와가(瓦家)로서 다포계(多包系) 계통(系統)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활주(活柱)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부속 건물로 업경전, 요사채(설선당), 승방(선불장), 환학루, 종각, 나한전, 칠성각, 산신각, 적묵당, 성보박물관(영산회상전), 일주문, 응양각 등이 있다.
금산면사무소로부터 약 400m 지점의 금산면 용아리 1102-1번지에 소재한 금호지는 전체구역면적이 204,937m² 규모의 큰 저수지이다. 금호지의 전설은 무척 흥미롭다. 옛날 옛적에 황룡과 청룡(혹은 흑룡)이 하늘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것을 본 어느 용사가 싸움을 멈추라고 소리치자 청룡이 놀라 아래를 보는 순간 황룡이 청룡의 목을 비수로 찔렀다. 청룡이 땅에 떨어지면서 꼬리를 치니 그 꼬리에 쓸려 갑자기 하나의 큰 못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의 금호지로, 금호지는 청룡을 닮아 항상 물이 맑고 푸르다고 한다.
수정산(일명 금산) 기슭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본래 고성 옥천사(玉泉寺)의 포교당이었다가 현재는 해인사에 속해졌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 다포계의 건물로 대웅전 편액은 근대 한국불교의 선풍으로 이름을 떨친 경봉스님의 글씨이다. 부속 건물로 선방, 천불전, 연화유치원, 승방, 종각 등이 있다.